LOVE

가희에게

2024. 1. 30. 02:19

 가희야.
 안녕! 잘 지냈을까 모르겠네. 난 잘 지냈어. 잘 못 지내는데 편지를 쓴다고 하면 좀 웃기잖아. 뭐, 아무튼 에이스도 여전하고, 그림도 여전해. 그 녀석들이 너한테 편지를 쓴다니까 알아서 자기들 근황도 적으라고 하더라고··· 그림은 여전히 악필이야, 만약 편지를 받거든 너도 손도장으로 찍어줘.

 

 옴보로 기숙사는 좀 더 고스트가 늘은 걸지도. 기숙사생이 빠진 만큼 채워지기로 했나··· 덕분에 그림은 하츠라뷸에서 지낼 때가 더 많아. 작년만 해도 목이 잘렸는데, 올해는 일도 없이 지나가겠어. 음, 맞아. 우린 4학년이 되었거든. 슬슬 나도 경찰 관련 일로 연수를 다니려고 이것저것 알아보는 중이야. 그 리들 기숙사장이 졸업해 버렸다니, 목이 잘릴 일이 없다는 게 드디어! 라기보다는 아쉬워졌다니··· 그래도 여전해, 하츠라뷸은.

 

 누가 기숙사장이 되었는지는 비밀이야! 그 정도 비밀도 없으면 네가 다시 왔을 때 궁금한 것도 없잖아. 아무튼, 가희야. 학교생활이라는 게 정말 빠르게 지나더라고, 안타깝게도 트레이 선배에게 직접 파이 굽는 법에 대해 전수받았지만 내 실력은 일취월장하진 않았어. 그래도 먹어볼 만하긴 할 거야··· 일단 태우진 않으니까.

 

 한참 예전에 탄 맛밖에 나지 않는 파이를 내놓았을 때의 기숙사장에게 목이 날아갔을 때 너도 봤어야 했는데··· 아무튼 납득했어. 요컨대 재료를 낭비하면 목이 잘리는 건 당연한 일이라는 거지. 에이스는 부당 대우다!라고 했다가 목이 잘렸어. 이건 사진이 있으니까 몰래 붙여둘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사진이야. 네가 두고 간 고스트 카메라로 찍었거든. 어때, 나도 꽤 잘 찍지 않아? 큼. 에이스한테는 비밀이야. 절대로 친구의 그런 모습이 웃겨서 찍은 게 아니야. 절대로.

 

 음, 그리고 또··· 어, 정말 많은 일이 있었어. 정말 많은 일이. 그래서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어쩌지? 편지 뭉텅이로 만들어서 보낼 순 없잖아··· 무거워서 가던 길에 떨어질지도 몰라. 흠! 이럴 줄 알았으면 우체국에서 일하는 친구를 사귀어 볼걸 그랬어. 물론 우체국도 네가 있는 세상까지는 못 전해준다더라,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야.

 

 이런저런 자잘한 일이 많은데 이런 건 원래 얼굴을 마주 보면서 이야기하는 게 제일 맞잖아. 한도 끝도 없이 샘솟는 예술가의 영감과도 비슷하다고. 나는 예술하고는 거리가 멀어서 아직도 이게 무슨 소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반성문마냥 빼곡히 들어차게 써봤자 눈이 아프기만 하지 뭐가 좋을까,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가 칸이 슬슬 모자라··· 위기감을 느끼고 있어. 결국 쓴다고 마음잡고 하는 소리가 웃긴 소리뿐이잖아! 어제 늘 가던 가게에 샌드위치가 떨어졌다거나, 내일은 면접이 있을 거라거나, 생각보다 키가 별로 안 큰 일도 있고··· 옛날이면 너랑 이런 걸 얘기할 시간이 있었을 텐데 넌 잘 모르겠구나, 그래도 어른이 된다고 하면 다들 사느라 바빠서 얘기도 통 못하고 지낸다고 하더라고. 좋진 않지만 예행연습이라고 생각할게.

 음, 있잖아 가희야.

 진짜 별 건 아닌데.

 다음에 또 너한테 편지를 써도 되겠지?
 내 말은, 나한테 남아있는 게 아직 너무 많다는 뜻이야.


너의 오랜 친구가 ♠
P.S. 스페이드를 그리지 않는다고 해서 듀스 스페이드가 아닌 게 아냐!!!

 


 


편지를 쓰는 듀스의 현 상황
 듀스의 기분은 그렇게 나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좋은 편이네요. 평소였다면 감독생, 하며 불렀을 것을 듀스는 가희야. 라고 적으면서 편지를 시작합니다. 그야 잘못 도착하면 큰일 날 테니까요. 그곳에서는 가희가 "감독생"이라는 호칭을 가진 것조차 아무도 모르는 모양이니까.

 

 듀스는 가희가 떠나기 전 자신에게 한 약속이 있기 때문에 불안정한 기색은 없습니다. 그야 되도 않는 거짓말을 하며 자신에게 도망가는 게 그 감독생은 아니었으니까... 그게 전부라고 하네요. 남의 말을 듣는 대로 전부 믿듯, 듀스는 가희가 한 말을 믿습니다. 이것저것 들어보니 신분 증명도 퍽 어려운 감독생이 정착하며 살기까지의 현실적인 문제도 있거니와, 그때의 자신도 아직 경찰이 아니었고...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에는 꽤나 많은 게 필요하구나 라는 걸 깨달았다고 해요.

 


편지를 쓰는 듀스와 편지를 받는 가희의 현 관계
 두 사람이 이별을 직면하게 되었을 때 역시 좀 슬프긴 했나 봅니다. 물론 굉장히 건전하게 헤어졌지만... 어쨌든 가희는 돌아가야 했으니까요. '돌아가고 싶어'가 아닌 '돌아가야 한다'라는 말을 들은 듀스는 '역시 그렇지'라며 선뜻 손을 놓아주는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자신에게도 소중한 어머니가 있으니까... 가희에게도 그런 가족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그래도 회복의 여지가 있어요. 왜냐면 가희가 떠나기 전 듀스에게 한 약속 때문입니다. 듀스 좀 당연하게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봐요, 정말 먼 훗날일지도 모르지만... 그때의 자기는 어머니에게도 떳떳하게 자랑스러운 아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가희와 만나게 된다고 해도 부끄럽지 않을 거 같아서. 왠지 좀 더 큰 가희는 굉장히 대단한 사람~이 되었을 거 같아서 그렇다고 하네요.

듀스가 편지를 쓰면서 생각하는 가희에게 느끼는 감정
 때때로 가희를 생각하면 현재의 생활이 분명 안정적이고 문제도 없을 텐데도 듀스는 어쩐지 허무한... 느낌이 든다고 해요. 가희가 있다면 좋을 텐데~ 까지 닿는 생각이 좀 아차, 싶기도 하고. 자기가 정말로 행복한 걸까... 싶다고 해요. 어쨌든 가희랑 한 말이 있으니... 자기가 그냥저냥 살아가면 안 된다고 느끼나 봐요. 기왕 살 거라면 행복하게. 근데 가희가 들어올 틈이 없는 것도 아니에요. 오히려 틈이 있습니다. 언제든지 네가 온다면 마중 나갈 수 있게...


듀스가 편지를 쓰면서 생각하는 가희에 대한 인상
 성실한... 우등생. 일텐데 듀스는 어쩐지 자기들과 놀고 다녔던 문제아 중 하나에 가희가 들어있는 거 같다고 생각해요. 물론 듀스나 에이스나 그림은 문제아가 맞았다고 생각하지만... 가희는 우등생일 텐데 왜? 하고 자기도 영 모르겠는지 고개를 갸웃합니다. 그런 '문제아들'이라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몇 있었죠, 가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생각하면 새록새록 성실한 학생이라면 하지 않을 사건들이 무수하게 많이 생각나서... 좀 웃음이 나온다고 해요. 네 말이 맞아, 이런 애도 있었지 라며 생각하게 되는구나.

 

듀스가 하고 싶은 말
 너에게 있어서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해 묻고 싶다고 하네요. 어쩌면 좀... 객관적인 평가를 듣고 싶은 거 같기도 하고, 옛날의 자신은 단순하게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힘만 강하다고 해결되는 일은 없더래요. 그러니까 듀스가 생각하기에 가장 성실하고 또 그렇지 않은 감독생에게 그걸 질문하고 싶다고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좀 더 돌아보자면 사람이 약해도 괜찮은 걸까. 라는 말이에요. 좀 철 좀 들었다지만 역시 자기보단 가희가 더 생각을 잘할 거라고 생각이라도 하는지... 그리고 정말, 아주 문득 보고 싶다고 해요. 언젠가 보고 싶다고 하지 않아도 보러 갈 수 있는 거리로 살아갔었는데, 이제는 이게 익숙해졌구나. 나는 기다리는 게 익숙해졌구나.


듀스가 실제로 가희에게 보내는 편지에 쓴 말
 나 너한테 할 말이 너무 많은데 어쩌지!!!!!!!!!!! 라고 합니다. 잘 쓰다가 이런 건 원래 얼굴을 마주 보면서 할 말 다 쏟아내야 한다고 주장을 해요. 편지에 반성문마냥 빼곡히 들어차게 써봤자 눈이 아프기만 하지 뭐가 좋을까,라고도 적고요(ᄏᄏ) 그러면서 마치 가희랑 얘기하는 일 마냥 주저리주저리... 자기 얘기를 합니다. 오늘은 어쨌고, 내일은 또 어떨 거고... 옛날이면 너랑 얘기할 시간이 있었을 텐데 이젠 그러지도 못하는구나. 그러면서 좀 섭섭해합니다. 자기가 이렇게 말한다고 한들 가희가 볼 수 있다고 쳐도 가희의 이야기를 듣는 건 아무래도 무리일 테니까... 물에 얼굴을 가져다 대고 말하는 기분이라고 할까요. 뭐 그래도 어푸어푸하면서도 할 말은 다 하는 듀스입니다. 진짜 할 말 많은가보네...

 

듀스가 편지를 끝내는 말
 말을 다듬지 못하고 슬슬 끝내야겠다.... 이게 아니라 응? 쓰다 보니 슬슬 끝내야 할 거 같은데? 어 근데 나 아직 다 못 적었 < 이 상태인지... 조금 어리버리~ 하게 그러면 다음에 또 이어서 쓴다고, 오늘은 이걸로 끝이라고 적네요. 별로 로맨틱하진 않지만... 다음이라는 기회가 있다는 걸로 생각하며 살듯이, 듀스는 그렇게 편지를 끝내요.

 

 

녹차님 커미션